Top
Home
Reader
Admin
previous matter
next matter
  1037618     171     192  


*
내 돈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입출금 계좌가 있는 은행은 홍콩상하이은행HSBC입니다. 국민을 무시하는 국민은행이나, 고객을 깔보는 외환은행, 무슨 소리를 해도 들은 체 만 체 하는 우리은행, 하나같이 무뚝뚝한 하나은행 등 국내 시중은행들에 질려 있던 참에 알게 된 HSBC에 계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은행에서 '친절'이라는 걸 느꼈어요. 삼엽충이 거북이로 진화하고도 남을 시간 동안 기다리게 하고, 창구 앞에 앉으면 무슨 보모가 애 보듯 하는 눈빛으로 옆의 직원과 농을 부려가며 손님을 대하는 태도(며칠 전 외환은행에 환전 업무로 찾아갔다가 실제로 당한 사례입니다)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입출금 창구 앞에는 의자도 없지만 나는 정말 편안해졌었어요. 그런 친절은 별로 어려운 게 아닐 겁니다. 아니, 설사 어렵다고 해도 서비스 업종의 말단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하는 경제학적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HSBC는 다른 은행보다 대출 이율도 높은 편이고, 예금 금리도 낮은 편인데다가 환율도 외국환 매입을 주로 하는 내게는 그렇게 좋은 편이 못 됩니다. 외국계 은행이긴 하지만 사실 '외국계 은행의 이름만을 빌린' 아주 평범한 국내 시중 은행이어서 시티은행처럼 해외 계좌와 자유롭게 연동해 돈을 움직일 수도 없지요. 어느 정도의 평균 잔액을 유지하지 않으면 보관료까지 떼 갑니다. 그렇지만 이런 단점들은, 내가 HSBC에서 받을 수 있는 '친절'에 대한 비용cost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HSBC 은행에 실제로 가서 업무를 본 적이 딱 두 번 있습니다. 한 번은 계좌를 만들 때였고, 또 한 번은 예금 상담을 하러 들렀을 때였어요. 두 번의 친절에 대한 '비용' 치고는 너무 비싼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내게 그런 종류의 친절은 너무나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런 비용을 지불하며 친절을 구입합니다.


*
우리 동네에는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한' 구둣방이 하나 있습니다. 나이를 가늠하는 건 어렵지만, 5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어디에나 있는 철판으로 만든 상자 속에 있는 구둣방이에요. 보통 작업은 아저씨가 해 주시는데, 나는 이 아저씨만큼 불친절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아, '불친절'이라는 용어는 조금 틀린 표현 같군요. '무뚝뚝'합니다. 하지만 무뚝뚝한 사람은 쉽게 불친절하게 보여지지요. 일례로, 최근에 나는 내 오래된 배낭의 어깨끈을 잡아주는 리벳이 떨어져 이 구둣방에 수리를 맡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오간 대화는 다음과 같아요.


+ 안녕하세요, 배낭 수리 좀 해 주십사 해서 왔는데- 여기 이 리벳이랑 가죽 받침이 떨어져서요. 수리가 가능할까요?
- ... (잘 안 들림)
+ 네?
- ...라고. (잘 안 들림)
+ 잘 안 들리는데요, 다시 한 번 말씀 해 주시겠어요?
- 볼 일 있으면 가서 일 보고 오라고.
+ 아.. 그냥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얼마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 같은데요.
- (가방을 건네주며) 여기.
+ 잘 고쳐진 것 같네요. 얼마에요?
- 3천원.
+ (돈을 건네며) 여기 3천원입니다. 고맙습니다-
- ... (옆으로 미는 문을 드르륵 닫아 버린다)


어떤가요? 정말 무뚝뚝하고, 동시에 그 때문에 불친절하죠? 그렇지만 나는 이 아저씨의 구둣방에 가는 걸 멈출 수가 없습니다. 정말이지 불친절하고, 다녀오면 기분도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이 아저씨, 실력만큼은 세계 최고거든요. 나는 이 아저씨만큼 가죽을 잘 다루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구두를 잘 이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이 아저씨의 불친절을 감당하면서 이용하고 싶어하는 건 아저씨의 기술입니다.


*
'친절함', '기술'과 같은 無形財의 가격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무형재들을 비싼 가격에 구입해 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술'의 가격에 대해서는 혹시 안다 해도 '친절'에 가격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불친절하게 굴 턱이 없지요. 조금만 생각 해 보면, 친절도 거래의 대상이 되며 경제적인 potential을 가지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을텐데, 가격표가 붙은 有形財만이 돈을 불러온다는 가벼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해요. 하지만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긴 하겠죠 :-)



gming   06/03/21 18:34  
저도 일전에 '서비스'에 감동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 경우는 찻집의 일이었지만_ '찻집'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_ 그리고 서빙을 보는 사람으로서_ 갖춰야할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알게 해준 곳이었어요.

그곳은 홍차전문점이었는데_ 잘 모르는 메뉴판의 홍차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도 해주시고_ 찻잎의 향을 맡게 해주시면서 천천히 메뉴를 고를 수 있게 해주셨지요~ *

어느날 가본 찻집에선_ 메뉴에 대해 물어보니_ '모르신다' 하셨어요.
'홍차'가 유명하다고 들어서 간 곳이었는데_ 그런 말씀에 실망감이 들었었습니다.


어느 곳을 가나_ 작은 말한마디_ 작은 미소, 배려 한번이 사람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거 같아요_
저는 늘 사소한 것에 맘을 담게 되네요.~*
( 그런데 miaan님 글을 자꾸 읽다보니.. 말투가.. 말투를.. 따라하는 것 같네요.. ;;=ㅅ=; )
도리   06/03/21 23:08  
저도 오늘 여자친구가 여성전용헬스센터를 다니려고 전화를 했다가
관장이 너무 불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서 안다니기로 결정했답니다.
종종 종업원이 너무 불친절해서 역시 장사를 하려면 종업원 교육을 잘 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주인장께서 불친절 해버리시면 장사하기 싫은가 보다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miaan   06/03/22 00:14  
/gming님.
'차'처럼 델리케이트한 음료들의 경우엔, 저는 집에서 즐기고 있습니다. 도구를 갖추어 두고 차를 만드는 것도 '즐김'의 대상이 되지요. :-) 커피의 핸드 드립도 좋아하지만 확실히 집에서 쓰는 작은 모카 포트로는 진한 에스프레소가 잘 나오질 않습니다. 나중에 좀 더 큰 공간을 갖게 되면 에스프레소 머신을 하나 들여 놓으려고 해요.


그 찻집의 경우- '모른다'라는 대답 보다는 차라리 '알려주고 싶지 않다'고 대답하는 편이 나았을 뻔 했군요. 자신이 만들고 있는 메뉴를 '모르는' 사람이 만든 식음료를 먹는 건 확실히 고역입니다. 특히 차나 커피 같은 기호식품의 경우에는 더 그렇죠. 테크닉이 중요시되는 분야이니만큼 불친절해도 맛이 있으면 저 구둣방 아저씨의 불친절처럼 감수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어떠셨어요? :-)


한편, 손님이 메뉴에 대해 물어보는데 '알려주고 싶지 않아요. 내가 왜 댁한테 그런 걸 알려줘야 하죠?' 라고 대답할 배짱이 있는 음식점 주인이 있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요즘엔 그런 걸로도 장사가 되는 세상이잖아요 :-|
miaan   06/03/22 00:22  
/도리님.
저도 예전에 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gym에 등록했다가 '관장'과 '트레이너', '리셉션에 들어앉은 아가씨'의 불친절을 견디다 못해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모여 이 땅의 gym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저희는 그런 결론에 도달했어요: 'gym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불친절한 것은 일종의 concept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저와 제 친구들이 정말 일률적으로 경험한 불친절을 해석해 낼 방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튼 그래서 몇몇 친구들은 아예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며 호텔에 딸린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을 하기도 했고, 또 다른 몇몇 친구들은 싼 가격에 혹해 불친절을 감수하기로 했고- 저를 포함한 나머지 친구들은 그런 곳에 다니는 걸 아예 포기해 버렸답니다. 여자친구분께서 마음에 들어하실, 값싸고 친절한 직원들이 있는(환상적이군요!) gym을 찾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
miaan   06/04/10 14:54  
방금 나는 불친절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택배 기사도, 롯데호텔 뷔페의 점원도, - 내가 지금껏 경험한 불친절을 모두 합해도 당해 낼 수 없는 불친절, 그 이름 퀵서비스.


정말이지, 저런 사람에게 요금을 내야 하는 건가요? 등에는 '친절'이라고 써 붙여 다니면서.
rudeness   06/04/14 07:37  
단순히 빨리 보내기에는 퀵서비스 만한게 없으니 -_-;
참고 써야 하지 않을까요.

불러놓고 잠시 기다리게 만들면 분위기 참 험악해 집디다.

정말로 친절로 무장한 퀵서비스가 서비스 되어진다면
내 앞장서서 광고 해주고 싶네요.
miaan   06/04/14 12:18  
/rudeness님.
'적절하게 포장되지 않은 CRT 모니터는 오토바이 퀵 서비스로 배달할 수 없다'는 게 그 배달원의 요지였습니다. 이 문장은 내가 다시 정리한 것이고, 나는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기까지 3분의 시간이 걸렸어요. 수취인에게 전화를 걸어 CRT 안 된다는데 어떡할까 하고 묻는 그 20초, 그 20초를 못 견디고 배달원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슥 들어가 '닫힘' 버튼을 누르고 어딘가로 가 버렸습니다. 왜 사람들이 돈 벌기 어렵다고 하는지 약간은 이해가 될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직 택배나 퀵 서비스 배달원들과 '험악한 분위기' 아래 공존해 본 적은 없습니다.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치들 만큼 불친절한 種도 별로 없다고 하더군요. 안타까운 일이에요.
name  password   secret?
homepage 



prev.   1  ...  69  70  71  72  73  74  75  76  77  ...  102   next

CALENDAR
<<   2020 Apr   >>
S M T W T F S
293031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12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02)
trivia (60)
beeswax (23)
cyclograph (9)
toaleta (1)
reviews (1)
misco (4)
announcements (2)
a fireproof box (2)

  mainpage

SEARCH 

RECENT ARTICLES

RECENT COMMENTS
· ▶010-8788..
     03/28 - good
· ☆ 010-878..
     03/16 - ㅁㅁ
· ☆ 0 1 0-8 7 8 8-6 8 5 1..
     03/10 - ㅁㅁ
· 0.1.0.-.5.2.0.9..-.0.0.8...
     02/21 - 자유
· 0.1.0.-.5.2.0.9..-.0.0.8...
     02/17 - 코나
· ※수출차,작업차,수..
     02/12 - 수출전문
· ☆ 0 1 0-8 7 8 8-6 8 5 1..
     02/07 - 24시친절상담
· ■ 0.1.0.-.8.7.8.8.-.6.8..
     01/15 - you
· 10년전 글에 덧글을..
     12/10 - allozzaip
· 0/1/0-8/7/8/8-6/8/5/1 압..
     10/21 - 친절상담
· 설정.압류.골치아픈..
     03/26 - asas
· 할부금미납차 매입..
     03/21 - 카돌이
· 『골치아픈차량 법..
     03/21 - 빵야
· *010-4668-6374 설정차량..
     03/11 - 차차차
· 그 동안 종종 새 글..
     12/20 - 홍차가좋아요
· 오래간만에 인사드..
     10/22 - 페오
· AHAH44.COM 탑카지노 ..
     02/26 - 탑김과장

RECENT TRACKBACKS
· 싸..
     slay....

FAVORITE LINKS

BANNERS
Locations of visitors to thi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