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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절 좋다고 따라다니던 여학생이 몇 명 있었어요.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그 시절엔 누구나에게 누구나가 연애의 표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의 한 토론회에서 밝혀졌듯이 전 겁이 너무나도 많고 놀 시간이 별로 없는, 일반적인 연애나 감정적인 게임에 부적합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떤 제스추어도 보여주지 못했죠. 더군다나 어릴 때 전 애덤스Douglas Adams Outside Link의 열렬한 팬이었으므로 그런 복잡한 게임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안한 일입니다. 제가 예의와 사회적인 통념에 들어맞는 표현을 해 주었었더라면 그들도 시간과 노력을 아껴서 보다 실현 가능한 시도를 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아, 이런 사과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


여하간,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르고 나면 그들 중 어떤 친구들은 자신들의 '새 남자친구'를 제게 소개시켜 주기도 했고 또 어떤 친구들은 뜬금없이 그들의 마음 속에서 절 정리했다며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마지막 인사adieu를 하기도 했죠. 그땐 그들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치만 지금은 좀 알 것도 같아요. 그들이 절 좋아하느라 허비한 시간은 그들에게는 상당히 긴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거든요. 비록 내 황망하고 당황한 표정이 꽤 보기 힘든 것이긴 했어도 그게 그들의 시간과 관심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었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어쨌든, 내 개인적인 통계에서 그들의 그 '긴 시간'은 일 년 정도였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작은 차이 Outside Link는 있었지만요.


전 여러분들께 그런, 일 년도 넘는 긴 시간을, 제 응답을 기다리는 데 허비하도록 해 드렸습니다. 언제 돌아오겠다는, 언제쯤 새 글을 올리겠다는 기약이라도 있었더라면 여러분들께서도 조금은 마음 편하게 기다리실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란 사람이 워낙에 무신경하고 게으른 탓에 그렇게 해 드리지도 못했어요. 어릴 적 보던 만화잡지의 만화가 한두 회만 연재를 쉬어도 저는 만화가의 게으름을 두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렇게 참을성 없이 다른 사람들의 가벼운 게으름에 대고 욕을 해 놓고선, 결국 저는 여러분들께 아주 큰 폐를 끼쳐 버렸죠.


사실 블로그에 올리려고 써 놓은 글들은 있었지만 전 이 블로그를 열 때 여러분들께서 남겨주시는 덧글에는 빠짐없이 답을 드리겠다는 원칙을 세웠었기에 답을 드리지 않고서는 써 놓은 글들도 공개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며칠간 고속버스를 타고 한국을 돌아다니면서 덧글들에 대한 답들도 다 작성했으니 곧 새 글들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곳은 익산 인터체인지 부근을 지나는 동양고속 Outside Link의 우등 고속버스 18번 자리입니다.


지난 해 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손목시계를 하루에 팔만 몇천 번 씩 흘끗거리며 지구의 공항들을 들락거렸죠. 성의없이 아무 데나 도장을 꽝꽝 찍어대는 인천공항(RKSI/ICN Outside Link)의 출입국심사원들 덕분에 여권은 너덜거리고 .. 하늘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는지, 아니면 땅을 딛고 있던 시간이 길었는지 이젠 저도 혼란스럽습니다. 곁에서 지켜봤다면 분명히 정신나갈 정도로 바빠 보이긴 했을 거에요. 하지만 그건 적절한 핑계가 되지 못합니다. 전 인도차이나의 한 호텔에서, 높은 천장에 붙어 빙글빙글 도는 선풍기의 초당 회전수를 재는 쓸데없는 짓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올해부터는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전 최근에 너무 안일하고 무계획하게 살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친구는 시간 관리를 위한 상품인 프랭클린 플래너 Outside Link라는 제품을 권했는데, 십 년쯤 전에 선물받은 걸 써 본 결과 그런 플래너는 쓰다 보면 대체 내가 왜 플래너랑 이런 씨름을 해야 하지? 라는 의문에 빠지고, 그 의문의 결과로 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효과 외에는 긍정적인 용도를 전혀 찾을 수 없었기에 그런 물건을 들이는 건 그만두었습니다.


올해도 제 옆에는 빨간 몰스킨Moleskine Outside Link의 수첩이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몰스킨의 수첩을 사 본 적이 있으실런지 모르겠군요. 이 수첩을 사면 맨 첫 페이지에 '이 수첩을 찾아주시는 분께는 사례로 $____를 드립니다'란 말이 적혀있어요. 전 이 회사의 수첩과 공책들을 이십 년 가까이 써 왔지만 수첩을 잃어버릴 일도 없고 $____와 같이 큰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되찾아야 할,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계획이나 기록은 그곳에 적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번도 저 빈칸을 메워 본 일이 없습니다. 십수 년이 다 되도록 저 빈칸은 그냥 $____로 남아있었어요. 벌써 2009년이 온지는 한 달도 넘었지만, 지금이라도 전 저 빈칸을 채워 볼까 합니다. 전 계획과 기록을, 아무리 그것들이 사소할지라도, 제대로 관리하는 방법은 그 계획과 기록들의 가격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요 며칠 생각을 해 봤는데 이 블로그의 가격은: 적어도 제게는 아주 높은 수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제 블로그를 버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앞으론 잘 할게요. 또 잘 부탁드려요.



Never   09/02/07 10:08  
오랜만(?)에 읽는 새글이네요 ㅎㅎ
정확히 말하자면 miaan님의 블로그를 방문한 이후
처음 올라오는 글이네요 ㅋㅋㅋ
여튼 방금 miaan님의 댓글과 새로 써 놓은 글을 읽었는데,
역시나 읽을때마다 무언가 동감되고 깨닫는게 있네요 ㅎㅎ
2009년에는 miaan님의 바람대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셨으면 좋겠네요 ㅎㅎㅎ
그러면 블로그에 글도 자주 올라오겠지요?ㅋㅋㅋ
자주 놀러올게요~ㅎㅎ
홍차가좋아요   09/02/07 22:18  
어이쿠, 오랜만의 포스팅이에요. 돌아오셔서 기뻐요, miaan님 :-)
asteria   09/02/08 12:25  
'죄송했습니다' 씩이나.. 행여 앞으로 잘 못하더라도 대놓고는(!) 뭐라 할 사람 없을테니 걱정 마시길- 하여간 컴백 포스팅을 축하합니다 miaan님. ^-^
euning   09/02/08 23:47  
가끔 보면 miaan님은 이상한데서 겔름 부린다니까요 :-)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1년간의 겔름을 다 메꿔버리면서 말이예요.
으흐흐. 어찌됐든 다시 보니 엄청 좋군요~*
rudeness   09/02/09 11:06  
역시나 반가운 글입니다. 쉬지않고 읽어내렸는데 오랜 시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금방 공감할 수 있었어요. 요즘에는 뭐 경기가 않좋다고,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도 바쁘게 지내실 수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자주 뵐 수 있길 바래요.
miaan   09/02/13 02:12  
/Never님.
뭔가 여러모로 뜨끔한 덧글을 남겨주셨군요. 앞으로는 이 블로그에도 소홀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한 일 년동안 내팽개쳐두고 나서 새 글을 올리려고 보니 참 느낀 바가 많았답니다 :-)
miaan   09/02/13 02:12  
/홍차가좋아요님.
기뻐해주시다니, .. 정말이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참, 전 좀 전에 2호선의 신도림행 열차를 타고 있었는데 모 대학교 앞 역에서 타셔서 제 앞에 앉아계시던 분께서 모 대학교 도서관의 관인이 찍힌 책을 들고 계시더군요. 혹시나 했는데 저와 같은 역에서 내리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오늘은 좀 잘못 넘겨짚었지만 앞으로도 지하철에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게요 :-)
miaan   09/02/13 02:12  
/asteria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사람들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말들을 듣는 아주 곤란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능력은 내가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이 블로그에 들어왔다가 새 글이 없어 그냥 돌아가는 분들의 불평과 불만을 듣게 해 주기도 하지요. 난 지난 한 해 동안 소리없는 불만을 엄청나게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잘 못 한다면 난 더 많은 불만을 접하게 될 겁니다 :-0


좀 전에 전화한 결과 넌 아주 해괴한 곳에 있다고 하는군요. 문명 사회로 돌아오면 전화하세요.
miaan   09/02/13 02:12  
/euning님.
우린 지금 '겔름'과 '디디하다'와 '꼬롬하다'에 관해서 얘기중이죠 :-)


네, 겔름은 그만둘게요 ..
miaan   09/02/13 02:12  
/rudeness님.
바빠도 먹을 건 먹어야 합니다. 양꼬치도 먹어야 하고 곱창볶음도, 편육도 먹어야 하죠. 토스트와 서니사이드업sunny-side-up, 그리고 비타민제만으로는 견디기 힘들군요. 지난번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다음주는 좀 무리일 것 같고 .. 어쨌든 조만간에 뭐든 먹도록 합시다.


그나저나 요즘엔 너도 참 바빠졌죠. 전처럼 자주 놀 수 없어서 좀 심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네 얘기처럼 요즘은 바쁘다는 게 희소식인 하수상한 세월이니 서로 잘 견뎌봐요. 입도 조심하면서 말이죠 :-)
miaan   09/02/13 02:12  
/so2milk님.
근 2년만이세요. 잘 지내셨나요? 전 아직도 서울역 앞 게이트웨이 빌딩에 있는 쌀국수 가게에 가보지 않았고 대신 그동안 베트남엘 세 번(네 번인가?) 갔었습니다. 지금 당장 쌀국수 생각이 간절하지 않은 걸 보면 그동안 충분한 양의 국수를 먹어온 것 같아요.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전 또 하노이에 보내 달라며 생떼를 쓰기 시작할 겁니다.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


최근 이 블로그의 접속 통계를 살펴보니 많은 분들이 즐겨찾기 폴더나 RSS 리더에서 제 블로그 항목을 삭제하셨나봐요. 안타까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한 해 동안이나 빈둥거렸으니,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so2milk님처럼 기억하시고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역시 그만둘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
(par)Terre   09/02/15 00:27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요 ^^
건강하시죠?
miaan   09/02/27 01:33  
/(par)Terre님.
네, 물론 건강합니다. 며칠 전 낚시를 하다가 넘어져 물에 빠지는 난리에 팔에 작은 상처가 나긴 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전 아주 건강한 상태입니다. (par)Terre님은 지난 한 해 어떻게 잘 지내고 계셨습니까? :-)


지난 한 해 동안 너무나 정신이 없고 일들이 쉴 새 없이 터져 제 블로그는 물론 웹에서 알게 된 다른 분들의 블로그에도 한동안 가 보질 못했어요. 그러는 동안 (par)Terre님께는 아주 좋은 일이 있으셨던 것 같네요. 새로운 가족의 탄생에 즐겁고 기쁜 축하를 드립니다. 왠지 입으로만 드리긴 아쉬우니 혹 언젠가 정말 저와 어묵과 일본술을 같이 할 일이 있으면 계산은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
norm   09/04/16 10:13  
'작은 차이'에 쌍뻬의 책을 링크하시는 센스!!! 글솜씨도 그렇고... 감탄만 하다 갑니다!!!!
miaan   10/01/11 19:57  
/norm님.
하하. 저한텐 글솜씨 같은 건 없는데 .. 어쨌든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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