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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흐림. 밤에 비


1.
오늘 나의 아침식사는 조미된 돼지고기 육포seasoned pork jerky가 잔뜩 올라간 뻣뻣한 크로와상이었습니다. 프랑스의 빵집Boulangerie Française이란 이름을 가진 빵집의 점원은 불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어쩄든 한 입 먹을 때마다 스스로가 불쌍하게 느껴지고 맥주 없이 이런 음식을 먹어도 되는 걸까 하는 비참함을 느꼈지만 그래도 두어 개 먹으니 배는 불렀습니다. 딴 거 먹을걸. 내일은 폴Paul outside link에서 빵을 사 먹어야겠습니다. 비싸긴 하겠지만 적어도 거기선 채썬 육포를 올린 크로와상은 팔지 않을테니까.


1. 1.
한국에서도 폴의 빵들을 먹을 수 있는 모양이에요. 난 지난해 시월, 십일월쯤 폴의 한국법인이 채용광고를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찾아보니까 여의도에 있는 매리어트 레지던스 outside link 1층에 매장이 있대요. 지금 난 한국 폴이 다음Daum에 만들어 둔 블로그 outside link를 보고 있는데 .. 난 저런 식의 기념사진들을 보면 기분이 참 이상해집니다. 파리Paris에서 저런 플라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는 건 당사자들에게도 별로 기분좋은 일이 아닐텐데 왜 저런 사진들을 찍는 걸까요? 뭐 어쨌거나, 만일 한국 폴의 빵들이 내가 프랑스에서 먹은 폴의 빵들과 완전히 같은 맛을 낸다면 이 빵집은 그럭저럭 추천할 만한 빵집이 될 겁니다. 그만큼(혹은 그보다 더) 비싸긴 하겠습니다만 :-/


근데 이 글을 트랙백으로 저 블로그의 글에 엮으면 저 블로그를 담당하는 직원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요즘엔 소비자를 상대하는 회사라면 임원들이나 주주들처럼 뒷짐만 지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도 웹 마케팅에 어찌나 관심을 쏟는지 F5 키에 동전을 끼워 사이트를 하루 종일 리프레쉬하며 지켜본다고 해요. 아마 저 블로그도 예외가 아니겠죠. 내가 트랙백 핑을 쏘면 저쪽에선 재밌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난 겁쟁이고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는 건 별로 현명한 선택이 아니므로 그만두도록 하겠습니다.


2.
나는 오늘 오후에 렌민광장人民广场에 있는 스타벅스Starbucks outside link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는 톨 사이즈의 카페 모카Cafe Mocha를 마셨고 나는 벤티 사이즈의 드립 커피Coffee of the Week를 마셨어요. 가격은 각각 RMB28,-과 RMB21,-이었습니다. 예전에 내가 중국에 왔을 때 RMB1,-은 120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백 원이 넘어요. 지금 여기서 벤티 사이즈의 라테를 마시면 6천 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스타벅스는 어처구니 없는 고가격 정책으로 비난을 받지만, 지금은 환율 탓인지 .. 중국 스타벅스의 커피 가격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이 훨씬 쌀 정도예요. 하긴, 유럽의 스타벅스에서 라테 한 잔은 보통 3,5-4 유로 정도죠. 4유로면 지금은 7천원이 넘는 돈입니다.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자산의 큰 부분이 외화인 나 같은 사람도 벌벌 떨면서 마셔야 하는 가격이에요. 아래의 사진은 렌민광장 앞 스타벅스의 테라스 자리를 청소하는 점원(의 허리께).




3.
숨을 쉴 때마다 어젯밤에 먹은 양고기 꼬치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는 책방에 들렀다가 내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렌민광장에서 내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커피빈CBTL outside link도 있고 콜드스톤Coldstone outside link도 있고 뭐 없는 게 없습니다. 이 도시는 서울보다 훨씬 생활수준이 높죠. 부동산 가격도 수준이 아주 높습니다. 내가 지금 있는 이 아파트의 평방미터당 시세는 RMB80.000,-라고 합니다. 서른 세 평 짜리 아파트라면 십육억 원 정도가 되는 셈입니다. 푸둥浦東 outside link의 강변에 있는 아파트들은 훨씬 더 상황이 나빠서 한국 돈으로 삼십 억 정도는 있어야 내 짐들을 다 쌓아놓을 수 있을 만큼 큰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4.
이따가 양꼬치 사러 가야겠어요. 어젯밤 내 방 근처에서 맛있는 양꼬치를 파는 노점을 찾았거든요. 오늘도 한 백 개 사 먹어야지 .. 정말이지 먹다가 죽어버릴 정도로 맛있는 그 양꼬치는 한 개에 RMB2,-입니다. 이 동네엔 산토리Suntory outside link의 맥주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역시 난 칭다오Tsingtao outside link가 좋군요. 최근에 이 맥주의 라이트 버전과 드라프트 버전이 출시된 모양인데 .. 다소 어거지를 부린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양꼬치와도 굉장한 조화를 이루는 맥주입니다. 하얼빈Harbin outside link이나 립REEB outside link도 재밌는 맥주들이죠. 환율이 이래도 이 맥주들은 한 병에 천 원 정도입니다.


5.
이제 양꼬치를 사 왔습니다. 백 개는 역시 배가 불러서 무리일 것 같고 이것저것 섞어 사십 개 정도를 사 왔어요. 나 혼자 먹을 건 아니고 친구랑 먹을 거에요. 이제 그만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이 꼬치들이 식어버리는 속도는 정말 엄청나고 꼬치 요리들은 식으면 맛이 없습니다.


6.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TV 방송을 보다가 심심해서) 티쏘Tissot outside link는 참 재밌는 회사입니다. 엄청난 고급 시계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삼십 달러 정도에 살 수 있는 쿼츠 시계를 만드는 것도 아니죠. 무브먼트는 직접 만드나 .. 그것도 아니군요. ETA SA outside link의 무브먼트를 쓰네요. 난 이런 회사의 시계들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사는지 정말 궁금해요. 어쨌거나 아래의 사진은 내 방에서 나와 조금만 걸으면 있는 티쏘의 간판입니다. 저 간판의 여성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난 참 부담스러워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홍차가좋아요   09/02/27 02:47  
우와, 혹시나 오타가 있을까해서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자려고 했는데 새 글이 올라왔네요! 그런데 저 여자 이쁜걸요 :'-0
cancel   09/02/27 13:02  
제목에 쓰여 있는 날짜는 음력인가요? 다시금 이 블로그에서, 언제나처럼 바로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듯한 미안님의 새 글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반갑네요. :)
euning   09/02/28 03:37  
세상에나... 모처럼 이른 시간에 곤하게 자보고싶어 어제, 오늘 맥주를 마셨어요. 어젠 효과가 있더니 오늘은 5시간도 채 못가고 사라졌네요. 보통 이 시간을 전후해서 잠들었는데 깨어나버리니 이것저것 눈에도 안 들어오고 잠도 안오고 그러네요. 3번째 캔을 땄어야했는데...
참, 부산에서 찾은 양꼬치 집이 miaan님이 가르쳐줬던 신림집보다 맛 없었다고 내가 말했던가요? 신발밑창도 씹어 먹는 친구와 함께 갔었는데 한번 베어 물더니 왜 이런델 데려왔냐고 징징거려서 그 뒤론 가보질 않았어요. 사실 그정도로 나쁘진 않았는데 말이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맛 있었던거 같기도 하고... 몸은 아직 건장한데 머리 속은 이제 아닌가봐요; 긴가민가하네;;
rudeness   09/03/01 03:22  
여행의 향기가 묻어나는 흔적을 보고 있노라니, 어딘가 도망가고 싶어지는 새벽입니다. 여전히 반갑고 즐거워요 miaan님의 포스트는... ^^;
suntory의 맥주가 중국에 진출해 있다는 사실은 꽤나 놀랍군요.
雨翁   09/03/04 17:57  
정말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가끔 와서 기웃거리기는 했더랬는데,
miaan님께서 긴 여행을 떠나셨던 게 한 가지 이유이고,
또 한 가지는 제 자신이 너무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었기 때문에,
그동안 간단한 인사를 쓸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전혀 궁금해하시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간략하게 공백 기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① 07년 여름, 저는 급성 간염에 걸렸습니다. 회사를 휴직하고, 약 1개월간 입원 생활을 했더랬지요.
② 한국에서 입원 생활을 하던 도중, 사귀던 친구가 임신했던 사실을 알고
③ 07년 11월, 이미 몸이 무거워진 친구를 생각해서 양가 가족들만 모시고, 이쪽에서 간략하게 식을 올렸습니다.
④ 08년 03월, 건강한 딸아이가 태어났고, 요즘은 머리맡에 기어와서 제 다리베개를 하는 묘기까지 보여주는데...
⑤ 이번엔 회사가 좀 힘들어졌습니다. 원래 몸 담고 있는 회사가 불황과 맞물려 거의 도산할 지경에 이르렀고
⑥ 차제에 후배와 작은 회사를 차려서, 그 유명한 '처자식 먹여살리기'를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2개월째로군요 :-|

...
쓰고 보니 몇 줄 안되는데, 저 한 줄 한 줄에 참 여러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얽혀있더랬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인고 하니...
한 번만 봐 주시고 아는 척 해 주세요.
miaan   09/03/30 01:43  
/홍차가좋아요님.
제가 '그런 셔츠'를 보면서 느끼는 건 사실 셔츠의 질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도 가끔은 값싼 원단으로 대충 만든 셔츠를 입어야 할 때가 있고 어떤 경우엔 그런 셔츠들이 구세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질이야 어찌되었든 하얀 셔츠들을 파는 곳이 遍在하는 건 제겐 좋은 소식입니다.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전 뭐가 묻은 셔츠를 입고 있는 걸 정말 싫어하거든요.


제가 선물받은 셔츠를 컬러에 아주 짙고 굵은 스티치 무늬가 들어있고 가슴팍의 호주머니에 플랩이 달린 디자인의 하늘색 셔츠입니다. 전 절 매일같이 보는 사람이 이런 셔츠를 제게 선물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셔츠들은 딱 한 장을 제외하면 모두가 밝은 무채색에 무늬도 전혀 없고, 전 제 일자리에서 '새로운 디자인의 셔츠를 입기에 나는 너무 회의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거든요. 게다가 주머니에 플랩이 달려 있으면 제가 늘 포켓에 꼽고 다니는 볼펜은 갈 곳을 잃습니다. 다음에 이 셔츠를 제게 준 사람을 만나면 이게 혹 짓궂은 장난이 아닌지 물


(쓰다가 쓰러져 버렸습니다 - 계속)


어봐야겠습니다.


기운을 내라는 말씀을 드린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난번 비밀리에 말씀드렸던 제 일에 관련된 사람들이 최근 이야기하는 것처럼 요즘 제 예측과 추측, 그리고 찍기 실력이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쩐지 요즘 홍차가좋아요님께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써 지난 말씀을 남겨주신 이후로 또 한 달이 지났고 서울은 경칩을 지내 거의 봄 날씨에 가까운 날씨가 찾아왔다가 지금은 꽃샘추위가 한창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북반구는 다소간의 출렁임은 보여도 어쨌든 계속해서 더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잘 지내고 계신가요? :-)


말씀 중에 나오는 토끼가 나오는 만화는 아마 '당근 있어요?'(원제: 'ぴくぴく仙太郞', 布浦翼; 1993-2001)가 아닌가 싶고, 아기가 나오는 만화는 '아기와 나'(원제: '赤ちゃんと僕', 羅川?里茂; 1991-97)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만화책 참 많이 봤어요. 지금은 만화책이 보고 싶어도 집 근처에 있던 만화방들은 거의 망해버렸고 멀리 있는 만화방엘 가자니 시간이 없는데다 서점에서 만화책을 사려고 해도 그닥 재미있어 보이는 만화가 없어 그냥 집에 있는 만화책들만 뒤적거리고 있습니다.


전 지금 아주 정신이 없습니다. 지금의 제 기분은 .. 마치 캘커타 한복판에서 사람들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게 된 롤스로이스 안에서 이청준의 소설을 삼십 분 만에 읽고 감상을 적어내라는 숙제를 받아 든 것 같아요. 요즘은 제게도 기운이 필요합니다. 변덕이 심한 이곳의 날씨도 그렇고 제가 하고 있는 일들도 절 아주 귀찮고 힘빠지게 합니다. 아, 방금도 한 계약에서 문제가 생겼어요. 이 계약에 연관된 네 사람이 서로 다른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덧글에서의 다음 주는 삼월이었지만, 이번 덧글의 다음 주는 벌써 사월이네요. 다음달에 전 싱가폴에 가야 할지도 모르고 다시 상하이에 가야 될지도 모르고 .. 저도 이제 제 일들이 어떻게 어디로 튈지 모르겠습니다. 한 주에 한 번 정도는 불이 완전히 꺼진 방에서 메스꺼운 프랑스나 이탈리아 음식을 뱃속에 넣지 않은 채로 아침에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자고 싶어요. 비록, 불행하게도, 전 내일도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야 하지만 홍차가좋아요님께서는 편안한 밤 보내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 요즘 코인로커 방법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했다는 겁니다 :-)
miaan   09/03/30 01:43  
/cancel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저도 예전에 도미노에 관한 글에 남겨주신 cancel님의 殺人寸鐵과도 같은 덧글들을 또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반가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더 자주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벌써 지난 업데이트로부터 한 달이 훌쩍 지나버렸군요 :-(


제목의 날짜들은, 물론, 양력 날짜들이에요. 전 지난 1월 중순부터 월말까지 중국에 있었고 또 다른 동네에 갔다가 다시 다른 동네에 갔다가 그곳도 아닌 동네에 있다가 지금은 또 다른 묘한 동네에 있습니다. 이곳은 아주 지루해요. 제가 지금까지 한 달 이상의 긴 시간을 보낸 지역 중에서 이렇게 특색없는 동네도 찾기 힘들 겁니다. 얼마 전 절 만나러 이곳에 왔던 친구는 이곳이 아주 좋은 곳이라고 연신 감탄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건 아마 이곳의 술과 술안주가 값싸고 맛있기 때문일 겁니다. 네, 이곳은 지루하긴 하지만 그래도 전혀 장점이 없는 동네는 아니랍니다 :-)
miaan   09/03/30 01:43  
/euning님.
술로 잠을 만드는 건 별로 현명한 선택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전에 술을 한 잔씩 하곤 하지요. 나도 가끔 마시곤 합니다. 근데 자려고 (한국의)맥주를 마시는 건,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별로 효율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난 euning님의 수용주량이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위스키나 브랜디를 마셔봐요.
miaan   09/03/30 01:43  
/rudeness님.
산토리suntory 얘기를 좀 길게 써볼까 했는데 그 얘기는 요즘 하고 있는 연구와 맞물린 데가 많아서 공개된 곳에 적기는 좀 그렇습니다. 일단 사람들과 상의를 좀 해 본 뒤에 .. 그나저나 카드지갑은 찾았어요?
miaan   09/03/30 01:43  
/雨翁님.
3년 전, 이 블로그에서 저는 '너희들 중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John 8:7)는 말이 정말 정말 위험한 주장일 뿐 아니라 그 말이 종교 경전이라는 틀을 벗어나 혼자 돌아다닐 땐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는 슬로건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 생각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전 雨翁님을 용서하고 말고 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블로그의 주인인 저도 한 해도 넘게 생사도 알리지 않고 블로그를 방치하지 않았겠습니까 .. 그런 제 블로그에 다시금 찾아와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2007년 가을부터 2009년 봄까지, 전 한 방향으로만 갔다면 지구를 여러 번 돌았을 만큼(저도 이제 암산이 좀 힘들어질 나이인가봅니다. 어쩌면 수십 번일지도 모르겠어요) 긴 거리를 비행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 비행 중 대부분의 핑계는 휴가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말씀처럼 서울의 제 자리는 오랫동안 비어있었고 지금도 비어있습니다. 조만간 돌아가긴 하곘지만요. 지구는 그렇게 큰 별이 아니긴 해도 제 발로 돌아다니긴 상당히 넓어서 세상을 돌아다니는 동안 아주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雨翁님의 덧글을 보기 전까진 제가 겪은 일들도 말이 안 될 정도로 극단적인 경험이었다고 생각했는데 .. 雨翁님이 겪으신 일들은 제 일들에 비할 바가 아닌 것 같습니다. 몇 가지의 걱정되는 일들과 몇 가지의 축하드릴 일들, 그 총합이 雨翁님께 기쁘고 행복한 방향이었기를 바랍니다.


시작하신 사업이 어떤 사업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같아서는 어떤 사업이든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시잖을까 적이 염려가 됩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금융위기랍시고 세상이 떠들썩하던 지난 반 년 보다 요 3주가 훨씬 힘든 것 같아요. 벌여놨던 일들 중 몇 개는 차라리 손대지 말 걸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을 할 정도로 박살이 났고 어떤 친구들은 일을 때려치우고 오픈엔드 티켓만 쥐고서는 산으로 바다로 가 버렸습니다.


예전에, 제 業이 뭐건 간에 嶪이지는 않기를 바라신다는 말씀을 적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요즘엔 특히나 그 말이 절실히 다가오는군요. 부디 雨翁님과 제 業이 嶪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본도 한국도 지금은 환절기입니다. 날씨를 알아보니 일교차가 아주 심각하네요. 건강에 특히 유념하시고, 또 말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雨翁   09/04/06 14:52  
/miaan님.
항상 느끼는 거지만, miaan님 글을 읽을 때면 아주 오래된 사진첩에서 좋아하는 사진을 꺼내든 느낌이 듭니다. 사실 전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왜 이런 연상 작용이 일어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제 머리 속에 있는 miaan님의 이미지는,
① 빼빼마른, 까무잡잡한, 아주 해박한, 부채율 0%, 정말 예의바른 사업가
② 아주 똑똑한, 돈은 못 버는, 빚은 많은, 덩치는 남산만 한, 방사선과 의사
③ 매우 괴팍한, 알고 보면 참 착한, 회사원(해부학적으로는 여성)
이 세 지인의 이미지가 더해진 ☆◇한 모습입니다.


언젠가 예전에 발급해 주신 서울 커피 티켓을, 혹은 제가 발급한 도쿄 맥주 티켓을 쓸 수 있는 날이 오면, 아마도 이 재미있는 상상에도 종지부를 찍게 되겠지만, 이 상상이 그저 계속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시국에 시작한 일이다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괴롭기는 한데,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요. miaan님께도, 저에게도.


4월 26일, 서울에서, 한국 쪽 친지분들께 인사를 겸해서 간략한 식을 다시 올릴 예정입니다. 말이 결혼식이지, 제 성격이 워낙 허술해서 폐백도 주례도 없는, 그저 밥이나 한 끼 대접하고 축하한다는 말씀이나 들으려는 자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만서도. 저희 부부는 딸아이 손을 붙잡고 셋이서 입장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위 사람들이 너무 기겁을 하는 게 한 가지, 그리고 딸아이가 아직 걷지를 못한다는 게 또 한 가지 고민거리입니다 :-|


이전에도 miaan님께 덧글을 달 때엔 시간이 제법 걸렸는데, 지금은 머리가 혼란스러운 탓인지 시간을 두어도 말끝이 정리가 안 되는 걸로 보아... 길게 쓰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일간 또 인사 올릴께요 :-)
miaan   10/01/11 19:58  
/雨翁님.
아주 오래된 사진첩에서 꺼내든 사진 같은 느낌을 받으시는 건 제가 답을 드리는 데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인 건 아닐까, 좀 걱정스러운 생각마저 듭니다. 지금처럼 세월이 빠른 세상에서 일 년, 이 년 같은 시간은 상당히 긴 시간임에 틀림이 없으니까요.


말씀을 남겨주셨던 봄이 예전에 지나가고 여름과 가을을 지나 해가 바뀐 깊은 겨울의 밑바닥에 들어와서야 답을 드리는 절 용서해 주세요. 새로 올린 글에서도 밝혔듯이 전 정말 정신없는 한 해를 보냈답니다. 답을 드리려 수 차례 키보드를 잡았었지만 정리되지 않은 형태소의 연속만을 보여드리는 건 그 또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만두길 반복했었답니다. 그렇다고 제가 예의바른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雨翁님의 결혼에 축하드린다는, 앞으로도 좋은 세월만 있길 바란다는 짧은 인사도 드리지 못하잖았겠습니까. 안타깝고도 죄송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축하드리며, 雨翁님께 앞으로 좋은 세월만 있기를 바랍니다.


답을 드리지 못하던 시간동안에, 또 저는 한 방향으로만 갔다면 지구를 여러 차례 돌았을 정도로 많은 거리를 비행하며 지구 여기 저기에서 발품을 팔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일은 생각했던 것 만큼 잘 풀리지 않았고, 원래대로라면 제게 지금은 방콕의 레스토랑에서 친구와 식사를 하고 있어야 할 시각이지만, 캄보디아에서의 일이 끝나고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빙판길의 미끄러움에 넘어지는 혹독한 세례를 받아 서울의 제 방에서 억지스러운 칩거 생활을 하며 읽지 못하고 쌓아 두기만 했던 책들을 좀 읽어 치우고 있는 중입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고 잡아 든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雨翁님께서 말씀을 남겨주셨던 지난해 4월 제가 방에 틀어두었던 TV에서는 한 여자 아나운서가 bear market rally란 말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내뱉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결국 드러나기를 bull market이었고, rally는 계속되었고 많은 사람이 경기 회복의 혜택을 받았지요. 안타깝게도 전 그 회복이 가져온 기회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지만 해가 바뀌고 시장의 출렁임이 안정세를 보이는 지금 그때의 그 rally가 雨翁님의 사업에는 좋은 서광이었으면 합니다.


전 올 여름쯤 새로운 일을 하나 시작할 생각입니다. 제가 일본어를 잘 했었더라면 東京에 베이스를 둘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안타깝게도 전 일본어를 거의 말하지 못하므로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겠네요. 그래도 일본은 가까우니까 가까운 시일 내에 雨翁님께서 발급해주신 東京 맥주 티켓을 쓸 가능성이 그만큼 희박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짧은 답신을 드리는 데에도 약 팔 개월 여의 시간을 접어버린 사람이 하는 '가까운 시일 내'란 말이니 믿을 수 없다셔도 전 그냥 유구무언의 자세 외엔 취할 게 없긴 합니다 ..


무리한 부탁이라면 않으셔도 좋지만: 혹 이곳을 잊지 않으시고 다시 찾을 기회가 생기신다면 잘 지내시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잘 지내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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