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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문득 자전거가 타고 싶어서 가지고 있던 꼬냐고Colnago의 로드 사이클 프레임에 붙일 이런 저런 부속과 뒷바퀴를 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 지갑 안에는 하룻밤 술값 정도 지불하고 나면 텅텅 빌 정도의 돈 밖에 없었고, 통장의 잔고도 내 생각보다 한참 적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는 언젠가의 급료로 받은 돈이 내 책상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냅니다. 금액은 내가 기억하기로 118만 8천원. 그 돈과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돈들을 합치면 여러 부품들을 사고도 남을만한 돈이 됩니다. 나는 희망을 가지고 봉투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봉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미처 '버림'이라는 행위를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을 정도로 어렸을 때(물론 지금도 그 행위에 대해서 제대로 학습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상상했던 서랍장이 있습니다. 냉장고 크기의 이 서랍장에는 단 1개의 큰 서랍이 있고 옆에는 연습장과 연필, 지우개, 그리고 시계가 달려 있었습니다. 이 서랍장은 어떤 우연에 의해 특정한 물건들을 안에 가지고 있기도 하고, 다른 어떤 우연에 의해 서랍장 안을 텅텅 비우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어느 여름날의 13시 21분에 '우연히' 이 서랍장 안을 열어 보면 이 안에는 夏目漱石의 '草枕'이 실려 있는 新小說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우연한' 시각에 이 서랍장을 열어 본다면 '47년산의 Chateau d’Yquem 빈티지가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서랍장 안은 일종의 불확실uncertain한 공간이었습니다.


이 서랍장은 그냥 내 상상 속에 만들어진 데 그쳤지만, 실제로 내 방의 책상 위는 확률적stochastic이며 불확실한 공간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내 방의 책상 위에서 '우연히'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을 잃어버렸고, '우연히' 여러 물건들을 되찾았습니다. 이를테면 내가 아끼는 코이바Cohiba의 Esplendidos가 들어 있는 휴미더humidor가 그렇습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휴미더는 처칠Churchill 사이즈 시거를 80개쯤 보관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휴미더를 약 7개월간 잃어버린 일이 있습니다. 나는 그 7개월간, 휴미더가 '우연히' 어떤 확률의 구간을 만나 잠시 부정negate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다음의 물건들도 최대한 빨리, 그리고 '우연히' 되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a. Panasonic X200 GSM 휴대전화
b. a 항목에 딸려왔던 충전기
c. 우리은행 발행, 1,188,000원 액면의 비정액 수표
d. SIGG 알미늄 물통의 뚜껑
e. 다비도프Davidoff 시거 가위
f. 록시땅L'occitane의 Lotus scent spray
g. 엄청난 수의 립밤lipbalm
h. 작년 8월에 썼던 여권


등등.




니아브   06/06/25 02:13  
확실히 서랍장이라는 것은 묘해서, A라는 물건을 찾으려고 뒤졌다가 B라는 물건을 발견하고는 그 물건에 얽힌 추억이라던가를 생각하다가 A를 잊어버리고 마는, 그런 힘도 지니고 있지요. 과거의 어느 한 부분을 순간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어떤 것. 그건 단순히 물건의 힘인가요. 저는 그것이 있던 장소와 나타나는 순간과 모습에도 그런 힘이 깃들여져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스스로에게 정리정돈하는 습관이 없음을 교묘하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넘겨보려는 얄팍한 수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이 서랍장-을 포함, 방구석이라는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철저히 엔트로피의 량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 않나요.[웃음]


흠. 부디, 그 '우연'의 시간이 빨리 도래하기를요:)
miaan   06/06/25 02:45  
/니아브님.
4시간 뒤에 약속이 있어 슬슬 잠자리에 들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 손버릇에 들어와 봤다가 니아브님의 덧글을 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지금 제 방에는 서랍장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전에 들여놓았던 서랍장들을 떠올려 볼 때, 말씀하신대로 서랍장은 특정한 물체들간의 양립성을 부정하는 속성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양립성 부정의 문제는 물리학과 수학이 다루어야 할 것이 아니라 심리학의 영역에 있기는 하지만 Schrödinger나 Heisenberg도 생전에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요? :-)


친구가 책상 위를 좀 정리하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
Tumnaselda   06/06/25 11:30  
책상 위의 블랙홀과 화이트홀. 이라고 제 친구는 이름붙이고 있습니다...
nmind   06/06/25 21:54  
예전 TV에서 하던 "환상특급"을 무척 좋아했는데..
그 중에 그런 일화가 있었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집안에 적당한 정도의 먼지를 뿌리고 시간에 따른 낡음을 조절하는 조직이 있는데 이들이 가끔 실수로 공구를 흘린다던가 물건을 다른 곳에 놓는다...
가끔 꺼낸 기억도 없는데 사라지는 물건이 있을때 꼭 이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miaan   06/06/26 13:10  
/Tumnaselda님.
저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중력으로 작용하는 worm-hole들이 선택적으로 존재한다는 설은 그런 구멍들의 물리적 특성을 생각해 볼 때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조력도 문제가 될 테고요- 뭐, 이미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시작한 이상 아무렴 어떻겠습니까마는 :-)
miaan   06/06/26 13:18  
/nmind님.
최근에 인터넷에 도는 humor 글들 중에 '이과 출신과 문과 출신을 구분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 중에는 '정의'가 영어로 어떤 단어인지 묻고, 이과 출신의 경우에는 definition, 문과 출신의 경우에는 justice라고 답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방금의 이 이야기와 목적은 약간 달랐지만, 90년대 초반에 저와 제 친구들이 생각해 냈던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직'은 영어로 무엇일까요? organization? 아니면 tissue? :-)


nmind님이 남겨 주신 덧글의 '조직'이라는 용어를 tissue로 받아들인 채 꽤 한참을 고민했답니다.
nmind   06/06/26 22:12  
하하하..죄송합니다. 지금 다시 한번 읽어보니 오해하실만 하네요..;;
가끔 이럴때 한자를 사용하는게 오해를 줄이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이런 점에서 일본어에서 한자를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전달이 굉장히 힘들어집니다..).
그 조직은 組織*organization입니다. "조직"이라는 말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을 것 같은데 떠오르질 않네요...;;
miaan   06/06/27 09:53  
/nmind님.
음독과 훈독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일본어 문자(히라가나, 가타카나)를 거의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일본어 표기에서 한자를 전부 빼 버린다면, 전 일본어로 된 문장들의 의미를 감히 짐작도 할 수 없게 될 겁니다 :-|


'조직'이 아니면 어떤 낱말이 있을까요? 무리, 떼, 집단, .. 한국어에 관한 thesaurus가 있다면 이럴 때 참 도움이 많이 될텐데, 아쉽습니다.
miaan   06/06/27 10:53  
* 어떤 사람이 갑자기 독일어 월 표기를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Januar (Austria에서는 Janer라고 씁니다.) - Februar (Austria에서는 Feber라고 씁니다.) - März - April - Mai - Juni - Juli - August - September - Oktober - November - Dezember


* 스웨덴어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januari - februari - mars - april - maj - juni - juli - augusti - september - oktober - november - december


도움이 되었나요, G? :-)
(par)Terre   06/06/27 11:08  
잃어버린 물건들은 그것들이 필요하지 않을 때 우연하게 나타난다죠. :)
miaan   06/06/27 11:58  
/(par)Terre님.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을 섞으면, 역시 '필요하지 않다'를 연기할 수 없는 제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연을 관장하는 어떤 힘을 속일 수 있을 정도로 연기력이 뛰어나면 좋을텐데요- 충무로에서 알게 된 친구들도 가끔 사라지는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면, 얼마나 뛰어난 연기를 펼쳐보여야 필요한 물건들이 적시에 눈앞에 나타날지 짐작이 안 됩니다 :-)


흐릿한 창문 밖으로 서강대교가 보입니다. 우산을 챙겨 오길 잘 한 것 같습니다.
rudeness   06/06/27 12:22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님 덕분에 제 책상의 잡동사니들은 일정한 주기로 한곳에 모아집니다. 저는 한참후에 그 모음들을 뒤적이면서 절망을 하죠. 저는 단지 찾기 쉬울정도로 나열해두는 것을 좋아할 뿐이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물건 찾기 힘들어요. ^^; 좋아했던 책 두권을 누군가에게 빌려준 모양입니다. 낭패로군요. 차라리 빌려주지말고 선물이라고 해버리고 잊었으면 모를까, 괜히 굳어버린 제 머리탓을 해봅니다.
miaan   06/06/28 09:35  
/rudeness님.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 책상 위가 '언뜻 보기엔 괴상weird해 보여도 아슬아슬한 불안정 균형unstable equilibrium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고 주장하며 살았습니다만, 갈수록 물건이 없어지는 경우의 수가 점증하는 걸 생각하면 딱히 균형이니 평형이니 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남들 보기에도 번듯한 평형으로 내 방 안의 물건들을 배치하려면 지금보다 책상 위 면적이 27.2배쯤 늘어나야 할 것 같아요 :-|


나도 몇 년 전에 아주 좋아했던 책 몇 권을 친구에게 빌려줬던 일이 있습니다. 꿈에 나올 정도로 그 책들이 보고 싶어서 .. 며칠 전 우체국의 '익일오전특급'편으로 돌려받았습니다. 책에 관해서라면 나는 빚쟁이가 되고 맙니다. 최근에는 그럴 것을 염려해 아예 내게 들어온 책은 내 손을 떠나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
miaan   06/06/28 23:56  
분실물 1점 추가:


1. 신용카드 1점.
miaan   06/09/15 07:52  
작년 8월, 중국에서 썼던 여권을 찾았습니다. 왜 여권이 침대 밑에 들어가 있었던 걸까.. 어쨌든 얼른 여권과에 가서 습득신고를 해야겠어요. 3월에 여권 발급 신청을 할 때 여권과 창구 직원이 말하길 여권 분실 누적 건수가 2개가 되면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일들이 마구 일어난다고 했거든요. 차후 여권을 발급할 때 마다 경찰서에 가서 신원 확인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경찰과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내게는 10년에 한 번씩 있는 일이라고 해도 어쨌든 짜증나는 일입니다. :-/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다시금 분실 개수는 0개로 줄어들었습니다.
miaan   06/09/24 08:03  
Panasonic X200 GSM 휴대전화 - 이것도 찾았습니다. 분명히 충전기와 다른 전화기와 함께 브랜디 상자 안에 넣어 책장 안에 모셔 두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내 다른 GSM 상자 안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전원을 켜 보았습니다. Searching network 라는 한심한 글자가 화면의 1/3을 가린 뒤로 보이는 사진. 내게는 꽤 그리운 얼굴이었습니다.
miaan   07/03/05 10:26  
아주 오랫동안 나는 d번 항목에 있는 Sigg 알미늄 물통의 뚜껑을 찾으려고 굉장히 불확실하고 부정적이지만 밀도가 굉장히 높은 내 책상 위를 몇 번인가 뒤집어 엎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 물통의 뚜껑은 내 방 밖으로 나가 마루나 부엌에서 길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이 뚜껑이 제 발로 걸어나오기 전까지는 절대 이 녀석을 찾아 낼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좀 답답해져 있었는데:


Laken(http://laken.es)의 물통을 하나 선물받았습니다. Kukuxumusu(http://kukuxumusu.com/)라는 생활용품/의류 디자인 회사의 도안이 인쇄된 0,75L의 알미늄 물통입니다(둘 다 스페인 회사). 이 물통, 되게 귀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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